제13강 추상에 관하여

◆ 추상충동과 감정이입충동

※ 보링거가 말한 예술 양식 형성의 원인인 추상충동과 감정이입충동에 대해 알아본다.

▲ 테오도르 립스의 감정이입설

추상과 감정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이론적인 근원이 있는데 하나는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라는 사람의 감정이입설이다. 립스는 심리학자로 미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감정 이입설로 설명을 한다. 미에는 객관적인 견해와 주관적인 견해가 있다. 자연적 기초를 가지고 있는 물리적이고 측정 가능한 속성을 이야기 하는 객관적인 견해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주관적인 미가 있다. 테오도르 립스의 이론은 굉장히 주관적이면서도 일종의 관계주의적인 이론인 것 같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주관성을 사물에 투입한 다음 그것을 보고 좋아할 때 아름다움이 성립다고 한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볼 때 자기 향유가 들어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대상에다가 집어넣었다 다시 꺼내서 즐기는 것, - 일종의 나르시즘과 비슷하다 - 그게 바로 미라고 설명하는 것이 테오도르 립스의 감정이입설이다.

▲ 알로이스 리글의 예술의지

알로이스리글Alois Riegl이라는 사람이 있다. 비엔나 학파로 예술의지를 처음 얘기한 사람이다. 예술의지는 konnen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wollen이라는 것이다. wollen이 바뀌게 되면 시간이 흐른 후 konnen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알로이스 리글의 견해다. 그의 Kunst wollen, 예술의지라는 개념 속에는 다원주의 내지는 상대주의가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다. 각각의 예술양식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다른 양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예술과 구별되는 다른 유형의 양식들을 가리키는 개념이 추상이고 또 다른 예술의지로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양자가 결합되면 결국 뭐냐,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틀이 성립이 되는 것이다.

▲ 젠퍼에 대한 비판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wollen이지 konnen이 아니다. 이집트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양식이다. 젠퍼는 그것을 질료의 저항으로 설명한다. 이집트 예술작품을 보면 팔다리가 붙어있는 반면에 그리스는 떨어져있다. 떨어져있는 편이 조각하기 힘들다. 그리스 예술은 질료의 저항을 극복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포즈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예술사를 무엇으로 보느냐 konnen으로 보는 관점이다. 보링거Worringer는 이에 반박한다. 이집트 예술에서 기하학적인, 추상적인 양식이 나타나는 것은 모뉴먼트 부분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도 일상적인 장르에 보면 자연주의적 묘사와 다양한 포즈가 나타난다. 그리스인들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영역, 모뉴먼트에서는 불변하지 않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식의 묘사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wollen, 의지다. 그렇게 그는 젠퍼의 유물론적인 konnen으로서의 예술사관을 비판한다.

▲ 모방충동

자연주의 양식을 정당화하는 오래된 기초가 있다. 모방충동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방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모방은 인간의 본성이며 그에 적합한 예술은 자연주의적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주의적 예술이야말로 예술의 유일한 양식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보링거는 이 견해에 반박한다. 모방적인 충동과 환영주의적인 예술양식은 차이가 있다. 전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거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모방적 충동을 가지고 어떤 경우에는 추상적으로 모방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경우는 아주 구상적으로 모방할 수도 있는 것이지 양식화한 예술언어로서의 자연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방적 충동을 같이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모방론에 대한 반박

보링거는 자연적 모방 충동, 그 자체가 곧 형식의지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복잡한 경로를 거쳐서 형성된 형식의지와 자연적 상태에서 동물부터 갖게 되는 모방 충동은 같이 동일시 될 수 없다. 모방충동에 입각해서 환영주의 적 예술, 자연주의적인 모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시도의 근거 없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 아마도 테오도르 립스의 영향을 받아서 - 심리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묘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라는 것이다. 환경에 대해 만족할 때는 감정이입적인 예술을 발전시키게 되고, 환경과 인간 사이에 불화가 있을 때는 가시적인 현실을 떠나 어딘가로 올라가려는 추상충동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 예술 양식 형성의 원인 - 감정이입충동과 추상충동

그는 두 가지 충동, 감정이입충동과 추상충동 이 두 가지가 예술의 양식을 형성시키는 원인 이라고 한다. 루소가 돌아가자고 했던 자연은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악의가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 보링거의 자연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그것은 낭만적 허구에 불과하고 인간은 자연에게 끝없이 추적당하므로 자연 앞에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느 문명에서나 추상충동을 묘사를 시작하게 된다.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가 발견되지 전 그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최초의 추상은 신석기 이후의 기하학적인 양식이었다. 또 문명화 되던 단계에서는 어느 문명이나 추상적인 또는 기하학적인 양식에서 출발한다. 빙켈만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나머지 예술들은 추상적인 양식에서 출발해서 유기적인 양식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저지된 것으로 보지만은 그는 견해를 달리한다. 거기서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나갈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개념적 사회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에 대해 인간은 혼란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정지된 지점을 원한다. 그게 추상충동이라는 것이다. 원시적 양식, 문명 초기의 양식들이 추상으로 가는 것은 바로 그런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이집트인들의 추상충동과 그리스인들의 감정이입충동

자연에 대해 사람들이 파악하게 되면 이번엔 다양한 것들 속에서 공통성을 뽑아내는 게 아니라 공통성 속의 개별성들을 즐기려고 하고 그런 문화단계에서 다른 욕구를 갖게 된다. 감정이입충동을 그때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 환경에서나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이 인간에게 친화적인 그리스 같은 곳에서 가능하다. 이집트는 인간에게 친화적인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기하학 적인 양식 그대로 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로 설명한다. 어느 경우에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고 그 관계 설정에서 어떤 방식을 통해서 만족감을 얻느냐는 거다. 사람은 원 앞에서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점 하나를 찍으면 그 지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으로 파악되고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공간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 광활한 사막에서 느끼는 심리적 공포감들을 이집트인들은 추상충동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그리스는 워낙 자연이 친화적이었기 때문에 추상충동보다는 개별자의 다양성을 즐기는 감정이입충동을 가졌던 것이다.

▲ 추상충동 - 또 다른 의지

추상적인 양식을 빙켈만은 성장하다가 만 것으로 보았지만 보링거는 그것을 다른 예술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추상이 감정이입적인 예술을 하는 문명의 전단계가 아니라 그 너머의 현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추상적인 양식을 미성숙한, 미발달한 양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을 때도 자기가 속해있는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강한 추상충동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세다. 중세로 넘어갈 때 사람들은 물질적 세계와 자신이 동화될 수 없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때 그 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 기독교다. 사람들은 점점 감각적 세계를 넘어 위로 올라가려는 초월성을 열망하게 되고 형식은 추상적으로 변한다. 대표적으로 비잔틴 예술이 그렇고 이슬람의 아라베스크가 그랬다.

▲ 도리스양식 이오니아양식 코린트양식

도리스식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다. 직각으로 되어있다. 이오니아식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의 양식이다. 더 나아가면 식물 구조가 보인다. 유기적 양식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그리스가 초기에는 추상에서 시작하지만 점점 유기적 양식으로 가게 됨을 알 수 있다. 문명초기에는 다 추상에서 시작하지만 어느 정도 세계에 대한 개념적 파악이 끝난 다음에는 세계에 대한 일치감을 느낀다는 거다. 그런 단계에서 유기적 양식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건축을 만들 때 약간 일탈을 준다. 유기적 양식, 살아있게 만들려고 하는 것인데 이집트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그리스 인들의 건축물 자체를 인간으로 보는 방식과 동화시키려고 하는 의지 속에는 바로 감정이입충동, 객체와 주체의 일치를 추구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건물을 지을 때 후기로 갈수록 약간 안쪽으로 들여서 짓는 등의 경우가 있었다. 지각의 편안함을 위해서이다. 그것을 플라톤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플라톤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걸 추구한(이데아를 추구했던) 사람이었지만 예술가들은 이미 감정이입충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양식에 따른 추상충동과 감정이입충동의 변화

- 고졸 양식

딱딱한 느낌이다. 기하학적인 구축의지가 그대로 남아있다. 머리카락처리를 보면 살아있다기 보다는 기계적인 느낌을 준다. 상당한 추상 충동이 있는 것이다.

- 숭고 양식

(그림 117) 추상이 많이 후퇴했다. 이때부터 감정이입이 승하게 되면서 고전고대가 시작된다. 피디아스와 뮤론, 폴리클레이토스의 시대다. 그래도 어느 정도 딱딱함이 약간 남았다.

- 미의 양식

(그림 118) 미의 양식으로 들어가면 기하학적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쯤 되면 완벽하게 감정이입 충동이 추상충동을 억누르고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 추상에 관하여

※ 학습목표

추상충동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표현주의의 추상, 칸딘스키의 추상, 파울 클레의 추상에 대해 알아본다.

▲ 표현주의

보링거는 문명의 초기에는 추상충동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통해서만 인간이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원시 예술을 긍정한 것이다. 소위 원시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예술이라는 얘기가 된다. 원시인들은 대자연 앞에서 공포감을 느꼈다. 그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양식 자체가 추상적으로 변하고 그 부분에서 표현주의가 들어가는 것이다. 현대인들도 20세기에 세계와 친화성을 느끼지는 못하고 변해가는 세계 앞에서 현대인들도 공포감을 느낀다. 원시인들이 자연 앞에서 느낀 공포를 현대인들은 사회 앞에서 느끼게 된 것이다. 이때 추상적인 양식이 나오는 것다. 이것이 독일의 표현주의다.

▲ 표현주의의 추상 - Kirchner

키르히너다. 굉장히 강렬한 원색이고 삐쭉삐죽하다. 유기적인 느낌의 거의 들지 않는다.

이렇게 표현주의의 바탕에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불안감, 공포감이 깔려있고 이런 식의 원시예술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때 프랑스에서는 야수파가 있었다. 키르히너는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억울했는지 그림의 연도를 조작하기도 한다. kirchner는 1차대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 표현주의의 추상 - Emile Nolde

Emile Nolde의 작품은 표현주의 계열에 속하지만 영성을 강조해서 종교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중세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현세가 갑자기 낯설어지니 사람들이 영성에 의지해 종교성을 강하게 띠는 것이다. 키리키노가 세속주의라고 하면 이 사람은 종교적인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빙켈만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 본다면 이런 것을 퇴화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예술의지고 다른 충동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 Ding-en-sich

이런 표현주의의 예술 충동 속에 깔려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현대인들이 현실에 대한 불안감, 공포감이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낯설어진 것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재현해서 동화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걸 넘어서려고 한다. 그리고 이 느낌들을 오래전부터 근대인들은 갖고 있었다고 보링거는 얘기한다.

Ding-en-sich라는 개념이 있다. 물 자체. 우리는 세계를 의식할 때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그걸 sense data라고 얘기한다. 우리에게 세계는 감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세계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구조가 다르면 그걸 다르게 받아들이는데 사람들은 이 감각 자료 밑에 무언가 초감각적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인들이 느끼는 그것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니다. 어떤 낯섦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가식적인 현실을 뚫고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넘어가려는 초월성의 의지라는 것이다. 비가시적인 세계를 가시화하는 것이 현대 예술의 과제라고 했을 때 파울클레의 말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파울클레는 현대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보링거의 이야기와 맞아떨어진다.

▲ 칸딘스키의 추상

칸딘스키는 예술이 정신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칸딘스키는 왜 추상을 했는가. 키리키노나 에밀 놀데는 아직 구상성이 있다. 피카소와 마티스도 아직 구상성이 있다. 그에 반해 칸딘스키는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순수 추상이다. 물자체를 위해서 이다. 그는 모네의 그림에 나온 짚단을 순수한 형과 색의 유희로 보고 나중에야 짚단이었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회화의 가능성에 대해 최초로 생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론화 시키는데, 물질세계에 대한 불만이다. 산업화가 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인간들은 물질문명에 찌들어 천박해지고 황폐해진다. 그는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정신의 상승을 추구한다. 그때 마침 유행이던 신지학을 접한 칸딘스키는 그것을 유일한 구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순수 추상의 회화로 표현한다. 이렇게 칸딘스키가 현대 추상으로 오는 과정을 봐도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불화가 있고 그걸 뛰어넘으려는 초월성향이 있다. 에밀놀데나 키리키노와 달리 칸딘스키는 굉장히 차갑다. 이런 식의 또 다른 유형의 추상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 파울 클레의 추상

신이 세계를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가능성의 지대를 탐색해서 그림으로 실현하는, 회화를 통한 천지 창조. Genesis. 이것이 바로 파울클레가 추상영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현실을 유일한 절대적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떠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거다. 보링거가 얘기했던 세계와 인간의 낯설음이다. 파울클레는 굉장히 디지털적이다. 아날로그 세계는 결국 여러 가지 가능한 세계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디지털로 실험을 하게 되면 다양한 잠재 가능성들이 열린다. 디지털로만 가능한 세계들이 있다. 파울 클레도 다른 형상적 잠재성을 실현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은 유일한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많은 잠재성들이 있고 회화는 자기 눈을 좁은 가식적 현실에다가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바깥의 잠재성 위로 올려야 된다. 그 다음에 그것을 실현을 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화는 제2의 Genesis. 예술가는 신의 창조를 계속해간다는 관점이다.

▲ 예술에서의 절대적 기준이 무너짐 - 보링거의 의의

이런 추상충동에 의해 예술에서의 절대적 기준이 무너지게 된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17세기 고전주의, 18세기 빙켈만의 신고전주의, 사실상 19세기까지 넘어오고 이끌어왔던 서구 예술의 대 이론이 무너지는 것이다. 고전적인 예술 관념이 절대적으로 유일하게 올바른 양식이 아니라는 것이고, 예술 양식에 있어서의 역사주의, 성장하고 이런 식의 발전론 적으로 설명하는 논리가 끊기는 것이다. 오히려 동시적인 양식들의 다양한 존재, 양식적인 다원적인 인정이 등장하고 현대 예술이 등장하는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사실 보링거의 논문은 상식적인 얘기만 하고 있지만 당시 무르익은 분위기 - 이런 식의 예술은 끝났다 -에 나와서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래서 보링거는 적어도 독일적 맥락에서 추상회화가 등장하는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 되었다.

▲ 탄압받는 추상회화

나치는 추상회화들을 퇴화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별을 반대하던 보링거의 이론으로 양자를 구별한 후 보링거와는 반대로 차별한 것이다. 그들은 이 유기적인 양식이 올바르고 게르만적인 양식이라고 보고 추상회화를 퇴폐예술로 몰아서 퇴폐예술전다. 추상작품들은 대중에게 모욕당하고 이에 충격을 받은 키르히너는 자살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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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척척박사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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